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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힘센 우두머리가 이끄는 수십 마리의 기러기 무리가 있었습니다.
기러기들은 우두머리를 앞 세우고 남쪽으로 여행 중이었죠.
우두머리는 맨 앞에서 바람을 가르고, 눈보라를 뚫으며 뒤따르는 다른 기러기들이 날기 쉽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무리의 다른 기러기들은 힘센 우두머리 덕에 한 마리도 뒤쳐지지 않고 남쪽으로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입니다.
무리가 평소와 같이 우두머리를 따라 남쪽으로 날아가던 중,
숲에서 갑자기 날아오른 독수리 한 마리가
무리의 힘센 우두머리를 채갔습니다.

우두머리를 잃은 기러기 무리는 망연자실하여 근처 숲으로 내려 앉았습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기러기 무리의 다른 기러기들은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힘도, 자신감도 없었습니다.

무리의 모든 기러기들이 남쪽으로 갈수 없다고 생각하며 낙담하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숲 속에서 우두머리를 채어갔던 독수리가 걸어 나왔습니다.
기러기들은 두려워 우왕좌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잠깐!!!!!"

독수리가 외치자 깜짝 놀란 기러기들은 모두 독수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두머리를 잡아먹은 것에 대해 무척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독수리는 입가에 우두머리의 깃털을 잔뜩 붙인 채 말했습니다.

"비록 내가 그대들에게서 우두머리를 빼았았지만 그대들의 우두머리는 죽어가면서 내게 그대들을 부탁했지"

"거짓말이다!!!!!"
"거짓말이야!!!"

기러기들은 외쳤습니다.

하지만 독수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 하였습니다.

"정말이야.
그대들의 우두머리는 죽어가면서 내게 자기 대신 남쪽으로 향하는 여행길의 길잡이를 해달라고 부탁했단 말이야!!!!"

"믿을 수 없어!!!!"

"너희들 중 누가 바람을 가르고, 폭풍우를 뚫어 뒤따르는 것들이 날기 쉽게 만들어줄 수 있지?"

"......."

기러기들은 조용해졌습니다.

"날 봐!!!! 이 커다란 날개를 보라고!!
내가 앞장서서 날면 너희는 그저 내가 가른 바람에 올라타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아마 여행에 걸리는 시간을 절반은 줄일 수 있을걸?"

기러기들은 조용히 독수리가 펼친 날개를 보았습니다.
날개는 크고 강해 보였습니다.
정말로 독수리의 뒤를 따라 날면 독수리가 가른 바람을 타기만 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기러기들은 오랜 시간 서로 상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독수리를 우두머리로, 길잡이로 삼기로 하였습니다.

독수리는 크게 기뻐하며 "잘 생각한 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기러기 무리는 불안한 마음에 독수리를 바라 보았습니다.
독수리는 잔뜩 거만을 떨며 "그럼 출발해 볼까?" 하고 날아올랐습니다.
기러기 무리는 바람을 가르며 날고 있는 독수리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독수리는 정말 빨랐습니다.
그리고 독수리가 가르는 바람은 기러기 무리 모두를 기분 좋게 태워주었습니다.
무리는 정말 독수리의 말처럼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이전보다 더 빨리 남쪽으로 날수 있었습니다.

첫날의 비행을 마치고 기러기 무리는 흥분하였습니다.
이전보다 두 배 더 빠른 속도로 날아왔음에도 전혀 힘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해가 지지 않았다면 무리는 더 멀리까지 날아갔을 것입니다.
무리는 그날 쉴 곳을 찾아 내렸습니다.
그리고 무리는 배를 채우고 더럽혀진 깃털을 고른 후, 잠이 들었습니다.

깊은 밤, 무리가 모두 잠이 들었을 때
얕은 비명소리와 함께 발버둥 치는 소리,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리는 모두 깨달았습니다.
독수리가 자신들 중 하나를 잡아먹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너무나 두려워서, 그리고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해서 모두들 자는 척만 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기러기들은 간 밤에 사라진 동료를 찾아 보았습니다.
가장 나이가 많던 동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러기들은 서로 "그래 살만큼 살았잖아?", "맞아 어차피 이번 여행을 견딜지 어떨지도 몰랐던 거야" 라고 소곤대며 서로를 위안하였습니다.

그리고 독수리가 날아오르자 또 다시 그 뒤를 따라 날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독수리와의 여정은 계속 되었습니다.

날이 밝으면 기러기들은 독수리를 따라 남으로 여행을 하였습니다.
밤이 되면 독수리는 어김없이 무리 중 하나를 잡아 먹었습니다.

몇몇 기러기들은 두려워 달아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독수리가 갈라준 바람을 타는 것에 익숙해진 그들은 얼마 가지 못하고 기운이 다해 땅으로 내려 앉고 말았습니다.
기러기들은 독수리가 없이는 여행을 계속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 이었습니다.

독수리는 기러기들이 자신이 없이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자 길을 알고 있는 나이 많은 기러기들을 모두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나이 많은 기러기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자 독수리는 남쪽이 아닌 서쪽으로 날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기러기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독수리는 이젠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마리의 기러기들을 잡아먹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기러기 무리는 아직도, 남쪽에 도착만 하면 독수리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서쪽으로 날고 있습니다.

기러기들이 향하는 하늘에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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